“똑같은 원두인데 왜 맛이 다르지?”
커피를 처음 추출해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했을 질문입니다.
커피 맛을 결정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물’과 ‘온도’는 추출의 핵심 변수이기 때문에 이를 이해하면 집에서도 훨씬 더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커피 추출에 사용되는 물의 특성과 이상적인 온도 범위, 그리고 이 요소들이 맛에 미치는 영향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1. 커피 추출에서 ‘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사실 커피 한 잔의 98~99%는 ‘물’입니다.
그러므로 물의 성분과 상태는 맛에 매우 큰 영향을 줍니다.
좋은 커피 추출을 위한 물의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물의 경도(hardness)
물에는 칼슘, 마그네슘 같은 미네랄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성분들의 양에 따라 경수(hard water), 연수(soft water)로 나뉩니다.
경수는 미네랄 함량이 높아 커피의 향미 성분을 일부 억제하거나 특정 맛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바디감은 늘지만 깔끔함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연수는 미네랄이 적어 깔끔한 맛을 내지만, 맛이 약하거나 평면적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가장 추천되는 물은 **중경수(150ppm 전후)**로, 커피의 산미와 단맛, 바디감을 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밸런스가 좋습니다.
2. 물의 pH
물의 pH는 커피의 산미와 쓴맛에 영향을 줍니다. 이상적인 pH는 6.5~7.5 사이의 약산성 혹은 중성으로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수돗물 대신 정수된 물이나 커피 전용 미네랄워터를 사용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처럼 물은 단순한 용매가 아니라, 맛을 끌어내는 도구로 작용하며, 물의 종류에 따라 같은 원두도 전혀 다른 맛을 낼 수 있습니다.
2. 추출 온도는 왜 중요한가?
커피는 온도의 변화에 매우 민감한 음료입니다.
너무 낮으면 추출이 제대로 되지 않고, 너무 높으면 쓴맛이 강해집니다.
일반적인 추출 온도 가이드라인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핸드드립: 90~96°C
- 에스프레소: 88~94°C
- 콜드브루: 4~10°C (저온 추출)
온도가 커피에 미치는 영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 온도가 낮을 때: 카페인이 덜 추출되며, 향미는 약하고 산미는 살아남
- 온도가 높을 때: 쓴맛과 떫은맛이 강해지고, 산미는 약해지며 바디감이 진해짐
즉, 원두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에 따라 최적의 추출 온도가 달라져야 합니다.
예를 들어, 라이트 로스트 원두는 상대적으로 높은 온도에서, 다크 로스트 원두는 낮은 온도에서 추출하는 것이 향미 유지에 유리합니다.
바리스타들은 추출 중 1도 차이로 맛이 변한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상업용 브루어, 온도 제어 포트, PID 제어 머신 등을 사용해 정확한 온도를 유지하는 데 많은 공을 들입니다.
3. 물과 온도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맛의 스펙트럼
물과 온도는 서로 독립적인 요소가 아니라, 같이 작용하면서 커피의 향미를 결정하는 시스템을 만듭니다.
예를 들어,
- 경도 높은 물 + 높은 온도 → 쓴맛이 강화되고 과추출 위험 증가
- 연수 + 낮은 온도 → 바디감 부족, 약한 향미
- 중경도 물 + 적정 온도 → 향미 균형, 단맛과 산미 조화
이 조합을 잘 다루는 것이 ‘좋은 바리스타’의 기본 조건이기도 합니다.
요즘은 홈카페 유저들도 TDS 측정기, 온도계, 디지털 드립포트 등을 이용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기록하고, 커스터마이징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의 선택, 온도의 미세한 조정이 어떨 땐 ‘카카오 풍미’, 어떨 땐 ‘시트러스한 산미’를 끌어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 가정에서도 가능한 추출 팁
1. 온도계 사용 추천
전기포트에 온도 조절 기능이 없다면, 물이 끓은 후 30~45초간 기다리면 약 92~94℃로 자연 냉각됩니다.
2. 정수된 물 사용
수돗물은 염소 냄새가 향미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가정용 정수기 또는 생수 사용이 더 좋습니다.
‘커피 전용 생수’를 찾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3. 커피 도구 살균 시 온도 주의
너무 뜨거운 물을 사용하면 도구의 맛(플라스틱, 고무 등)이 배어 나올 수 있어,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론: 단순한 커피도 과학이 만든 결과
우리는 보통 ‘좋은 원두’에만 신경을 씁니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원두도 물과 온도가 받쳐주지 않으면 최고의 맛을 낼 수 없습니다.
커피를 잘 내린다는 건 단지 기술적인 행위가 아닙니다.
물과 온도, 그리고 그 안의 과학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일입니다.
내가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도, ‘이 물은 어떤가?’, ‘지금 온도는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던져본다면
훨씬 더 깊고 풍미가 좋은 커피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